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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기획서를 쓰는 예술인을 위한 내 작업을 기획서로 말하는 법 Part. 1-2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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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26-05-08 | 작성자 | 모모365 |
Q. 공모 사업이라 하면 주최, 주관처가 원하는 것이 있다고 하잖아요. ‘이런 작품을 뽑고 싶다’ 하는 것이요. 만약에 그게 내가 펼치려는 예술과 맞지 않을 때, 일종의 합의 방법 같은 게 있는지 궁금해요.
[최선영] 지원 사업에 선정되는 게 중요해 보이지만, 그보다 먼저 자기의 창작 의도를 언어화하는 과정이 제일 중요해요. 이건 오로지 나를 위해서 하는 거예요. 지금의 예술가 대상 지원 사업들은 ‘당신이 이걸 왜 하는지 납득이 되면 선정하겠다’라는 게 대부분이에요. 그런데 이 지원 사업을 이렇게 써야 하나 저렇게 써야 하나, 이래야 붙는다더라, 구체적으로는 이런 말들을 써줘야 붙는다더라 하는 소문이 오해처럼 있어요. 너무 개인적이거나 사소하거나 일상적인 표현을 쓰면 전문성이 떨어져 보여서 그렇게 쓰면 안 된다더라 라는 말도 있고요. 그러다 보니 정책 용어나 지원 사업 공고문에 나와 있는 용어를 핵심 용어로 쓰게 돼요. 지역 문화를 활성화하겠다 뭐 이런 식으로요. 그러면 계속 질문할 수밖에 없어요. 지역 문화를 활성화한다는 게 무엇일까요? 누군가는 축제가 열리는 게 활성화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카페나 문화 공간이 많고 거기에서 사람들의 일상이 소소하게 이어지는 걸 수도 있고, 아니면 내가 재미있게 놀 곳이 많아지는 게 활성화일 수도 있겠죠. 말이란 건 여러 가지 층위가 있는데요. 거시적이고 관념적인 표현을 갑자기 가져오는 건 그런 오해와 편견 같은 이상한 소문 때문 아닐까 싶어요. 그러다 보니 들어오는 기획서 100개 중 한 80, 90개는 동일한 말을 쓰게 되죠. 문화 예술 분야는 다양성이 중요한데요. 이런 문제에 직면하는 이유는 자기 언어가 축적되지 않았다는 것과 동시에 자기 언어에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 써야 해요. ‘그렇게 쓰면 안 돼’라고 할지라도 자기 언어를 충분히 고민해 왔다면, 쓸 수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축적되어야 하겠죠. 이렇게 썼는데도 못 알아들을 거면 뽑지 마. 내가 더 전문가야. 이런 마음, 이런 태도가 예술가라면 필요하지 않을까요.
[황상훈] 반대 얘기도 해볼게요. 그러니까 과업 지시서에 맞춰서 글을 쓴다고 해도 지원자들이 글을 읽지 않아요. 공공 재원의 기금을 마련할 때는 수많은 부처와 그 과가 이루어지게 된 정책 방향과 목적이 있잖아요. 기금이라는 걸 통해서 재원을 형성해 공모를 한다고 하는 건 성과를 거두기 위한 거예요. 과업 지시서를 보면 ‘본 사업은~’으로 시작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 말만 보고 따와서 작성하죠. 궁극적으로는 ‘이 기금을 확보하기 위해 당신이 가지고 있는 전문 영역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걸 쓰라는 얘기인데요. ‘올해 사업의 취지는 이렇게 됐고, 전년도와 뭐가 변화됐고, 우리 사회의 정책적 목표 중 어떤 것이 전환돼서 이 사업은 이런 성과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라고 쓰여 있는 기본 지표가 있을 거예요. 그걸 내가 하고 싶었던 일과 얼마큼 맞는지에 대한 것부터 계산이 된 후에 ‘내 작업은 이 사업 목적에 부합하고, 나는 성과를 낼 수 있다.’ 하고 쓰면 되는 거죠.
[조영신] 그러니까 고민이 쌓여 자기 언어로 표현되는 건 맞는데, 그 사업에서 요구하는 취지와 목적에 부합해야 해요. 그러려면 사업을 잘 이해해야 하죠. 이 사업을 왜 하는지, 뭘 얻으려고 하는지 목적을 파악한 후에 내 작업과 매칭시켜야 해요. 나 따로 사업 따로가 아니라요. ‘이 사업을 통해서 실현될 수 있는지’, ‘시도해 볼 만한지’ 같은 나와 사업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드러나야 심사 위원들이 ‘아, 이 사업과 부합하는구나. 선정하면 새로운 성과 내지는 새로운 시도들이 있겠구나’ 하고 보게 되겠죠. Q. 아까 얘기 나온 것 중 기획서에 관한 오해가 있었는데요. 주로 어떤 오해나 오류가 일어나고,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조영신] 지원사업은 공공 재원을 가져가는 거예요. 내 전문적 역량을 신뢰하고 주는 거죠. ‘사업 제안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기본을 갖고 있다.’라는 전제하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여기서 원하는 것을 잘못 말하면 오류가 될 수 있죠.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고, 이 작업이 너무 좋아서 열심히 했다는 자기애는 공공 재원을 갖다 쓸 수 있는 합리적 이유가 되지 못하니까요. 기금의 방향이 현시대를 못 쫓아간다는 얘기를 할 순 있어도 못 담아낸다고 얘기를 할 수 없는 건, 기금 자체가 그렇게 구성되도록 만들어져서 내려온 기본 바탕이 있기 때문이에요. 기금의 목적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오해나 오류를 없애는 기본이 되죠. 내 돈이 아닌 세금이니까요. 남의 돈이니까요. 남의 돈을 갖다 쓰려면 남의 돈을 잘 쓸 수 있다는 신뢰를 본인이 형성해야 해요. ‘나는 허투루 쓰는 사람이 아니에요’라고 얘기를 한다고 되는 게 아니죠. 오해와 오류는 과업 지시나 사업의 설명 같은 것들을 제대로 읽지 않아서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이해나 고민이 충분히 되지 않은 고정관념은 상상력을 막아요. 예를 들면 예술이 대중적이지 않다. 클래식이 국악이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다. 그래서 쉽게 접근하기 위해 ‘트로트를 오케스트라로 들려준다’. 이런 도식적인 방법이 양산되거나 되풀이돼요.
[최선영] 예술가들과 일대일로 만나서 얘기해 보면 그런 말을 왜 쓰는지 알 수 있어요. 거시적인 얘기를 해야 자신이 사회를 크게 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착각해서 그런 것 같은데요. 세상을, 모든 것을 다 구하려고 하는 건 아무것도 안 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세밀하게 자신의 전문적이고 날카로운 시선을 보여주려면 자신의 경험적 언어를 넣어야 하죠. 일상적이고 개인적일 수도 있는데요. 깊이가 있다면 충분히 설득될 수 있어요. 하지만 또 다른 오류에 빠지기도 하는데요. ‘의도가 좋고 진정성이 있다면 뭘 해도 좋은 기획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요. 하지만 이러면 의도만 너무 거창해지죠. 굉장히 섬세한 기획 의도에 비해 결국 하는 건 ‘시민 대상 음악회를 몇 회차 하겠다.’ 이렇게 되기도 하고요. 이거는 기획서의 문제가 아니라 기획력이 부족한 거예요. 기획이 그래서 어려운 거죠. 복잡하지 않게 정확한 의도를 담아서 자연스러운 형태와 방식으로 구현한 뒤 계획을 보여줘야 해요. ‘어떤 의도가 있는데 최소한 이런 것을 그리고 있다.’라는 계획성은 보여줄 필요가 있어요. 보여줘야 한다는 오해에 빠지면 기획 의도가 정리되지 않고, 기획 의도와 계획의 매칭이 안 되기도 하죠. 그러면 세부안만 확정돼요. 큰 방향이 없는데 너무 촘촘해지는 거예요. 자유로움이 중심인데 하나도 자유롭지 않은 계획서가 나오겠죠. 오류와 오해를 잡아주는 중심을 가진 기획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조영신] 기획서의 신뢰도를 높이는 포인트. 이 부분은 어려운 말이 필요 없어요. 자기가 하려고 하는 일에 얼마만큼 자기 언어를 사용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가. 그러니까 구체적이라는 건 세세하다거나 촘촘하다는 것과 달라요. 예를 들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작가 섭외를 해서 그 작가의 특징을 이용한 기획 의도를 작성했다고 쳐요. ‘시민들이 좋아하는 어떤 감각과 매치하기 위해 야외에서 전시해야 한다.’ 이렇게 연결이 돼야 맞겠죠. 구체성이라고 하는 것은 전문가든 비전문가든 누가 봐도 쉽고 분명하게 드러나요. 구체화를 위해 예술을 정량화, 수치화하라고 하는 게 가능하냐는 질문이 있었는데요. 가능합니다. ’이 작품을 몇 명이 보게 하겠다’ 이런 건 정량화가 아니고요. 내가 지금 하려고 하는 작업이 실제로 작년과 재작년 유사한 제목으로 몇 회 정도의 공연이 있어 왔고, 리서치한 내용을 경향으로 정리하는 정도면 심사 위원들은 충분히 판단하거든요. 불완전하면 근거를 들어 정확한 수치가 아니라는 걸 표기해도 돼요. 내가 이걸 얼마만큼 성의 있게 찾아보고 알아봤는지가 중요해요.
작년인가 심사하는데 기획서 두 개가 거의 동일한 내용으로 들어왔어요. 요즘 AI가 기획서를 쓰는 경우가 있어요. 불편한 사실이죠. 예술가나 창작자, 기획자의 미래를 걸고 AI로 기획서를 쓰는 시대를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활용은 하되 기획의 보편성이나 신뢰를 형성한 후 사례나 수치, 변화의 방향을 발굴할 때 사용하세요. 결국 본인의 부지런함이 가장 유용해요. 그리고 나를 이해 못 해서 안 주는 거라고 오해하고 가르치려는 기획서도 있어요. 예를 들면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에 관한 전시를 기획한대요. 포스트모더니즘을 설명하는데, 한 장을 다 쓰고 기획에 관련된 내용은 무색하게 두 줄이라든지. 재즈의 역사와 현실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작곡한 음악의 필요성을 나열한 후, 대중적이지 않아 음반은 유통이 가능하지 않을 거라고 분석해 놓으면, 그건 선정돼도 이상하지 않을까요? 기획서는 글이지만 신기하게도 그 사람이 보입니다. 카톡 문자에 감정이 있듯이요. 기획서의 신뢰는 구체성을 확보하려고 얼마나 성의있게 노력했는지가 저는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황상훈] 기획의 신뢰도를 높이는 포인트는 두 분 말씀과 연결되어 있는데요. 저는 두 가지로 봤어요. 진정성, 그다음에 구체성. 어떤 기획 의도를 가지고 있든지 간에 그 의미에 진심을 담아 잘 드러내는 게 중요한데요. 어떤 결과치에만 매몰되는 게 아니라 접근 방식과 과정, 이런 것부터 진정성을 가지고 시작해야 해요. 그리고 말씀하신 조사 탐구 과정에 충실해야 해요. 이런 과정이 모여야 진정성 있는 얘기가 될 수 있고,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실행 계획이 구체적으로 짜이죠. 용두사미가 되면 안 돼요. 하고 싶은 건 많으면서 실행이 몇 줄로 끝나버리면 안 되겠죠.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해야 신뢰도를 높일 수 있어요. ‘의미는 알겠어. 그런데 어떻게 할 거야?’가 되지 않게요. 진정성과 구체성을 계속 섞어줘야 해요. 진정성만 크거나 구체성만 크거나 하면 균형이 없어지는 거니까요. 균형을 잘 갖춰야 해요. 아까 뼈대 잡는 얘기 나왔잖아요. why에 대한 고민을 충실히 하고 그다음에 how, 어떻게 풀어갈 거냐 또 뭘 할 거냐 이 과정을 반복해야 해요. why와 what이 계속 반복되면서 내 의도가 구체적으로 구현되고 있는지 고민하다 보면, 두 가지 완성도를 챙길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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