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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기획서를 쓰는 예술인을 위한 내 작업을 기획서로 말하는 법 Part. 3-2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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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26-05-20 | 작성자 | 모모365 |
Q. 기획을 하면서 또는 지금 하시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전환점이 있다면요?
[조영신] 사업을 진행하는데 어르신 한 분이 저를 찾아왔어요. “작년에 공연하러 오셨던 분 맞죠?” 이러시는 거예요. 생각해 보니 이전에 공연 소리가 너무 커서 송아지가 난산한다며 항의하셨던 할아버지예요. 근데 작년에는 축제 소리가 그렇게 좋더니 이번엔 소리가 안 들린다고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때 제가 느꼈던 게 있어요. 처음 어떤 일이 시작될 때는 이게 좋은지 나쁜지 사람들은 잘 몰라요. 하지만 좋은 경험을 하게 되면 다음번부터는 나쁜 것과 좋은 것을 정확히 구분하시죠. 지금 내가 하는 일을 누군가가 잘 알지 못하더라도 한번 오셨던 분들은 다른 어딘가에 가거나 여기로 다시 오셨을 때 지금 이것이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실 수 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그 판단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그 마음이 저를 지금까지 이끌어 왔습니다. 지역 상권 활성화 기금으로 축제를 했었거든요. 동작구 노량진역 앞 만양로 상인들이 중심이 돼서 진행했던 노량진의 밤 야간 난전이었는데 그때 배운 게 있습니다. 몇몇 상인회 분들을 만났는데요. 대부분 ‘우리한테 얼마 줘요?’가 첫 질문이었어요. 이분들이 잘못되신 게 아니에요. 보통 상인들과 협업하면 장사를 하지 못하고 도와주거나 할인해 줘야 하는 게 있기 때문에 당연히 상인분들한테 혜택을 드려야만 하죠. 근데 드리지 않고 행사가 진행됐어요. ‘도전하는 청춘들을 위한 상인들의 응원가’라고 하는 슬로건을 함께 만든 순간, 상인분들이 자발적으로 도와주기 시작하셨거든요. 다음 해에는 청소 봉사대까지 만드셨어요. 우리가 보통 지역과 연계해서 사업을 한다고 할 때의 고정관념 같은 게 있잖아요. 하지만 믿어야 해요. 이때 시민의 힘을 절실하게 느꼈어요. 시간을 투자하면 투자한 만큼 고질적인 문제들이 덜 만들어져요. 저한테는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큰 힘이 되는 경험입니다.
[최선영] 기획이라고 하면 뭔가 자꾸 만들어내는 걸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같이 참여하는 예술가 혹은 시민들을 보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무언가를 준비해 가도 사람들은 결국 자기가 듣고 싶은 얘기만 듣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자기가 해석하고 싶은 대로 해석하기도 하죠. 기획자는 그럼에도 의도가 있어야 해요. 처음에는 의도를 섬세하게 준비하면 잘 전달될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그렇게 해서 전달되는 것도 있지만 이곳에 와서 자기답게 참여하고 반응하고 표현하는 게 더 중요한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뭔가를 채우는 기획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답게 반응할 수 있는 빈칸을 기획하려고 해요. 예전에 했던 예술인 역량 강화 워크숍도 제목을 ‘빈칸 투어’로 지었어요. 기획서 쓰는 법을 강의하는 게 아니라 자기에 대해서 생각하고 천천히 걸으면서 뭔가를 사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오히려 이런 것들을 기획하거든요. 근데 만족도는 훨씬 높아요. 많은 걸 가르쳐 드리거나 전달한 건 아니지만 이 순간 자기답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편안하고 안전하게 마련했을 때 사람들이 더 많은 걸 얻어가는 것 같고요. 그 환경을 어떻게 기획할지가 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경험하고 느낄 수 있게 시간대별로 빠짐없이 잘 배치하고 운영하는 거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사람들의 입장을 좀 더 고려해서 빈칸이 있는 기획 환경을 마련하는 것 같아요. 복잡해지기보다는 심플하지만 정확하게 내 것을 놓고 나머지는 많이 비워두는 걸 하고 있어요. [황상훈] 깊이 있게 탐구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잖아요. 충실하게 그 내용에 대해 깊게 들어가 봐야지 제대로 좀 이해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이 들어요. 얕게 알고 나면 표피적인, 파편적인 기획밖에 안 나와요. Q. 실패나 시행착오를 통해 분명해진 나의 기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조영신] 저는 다행히 크게 실패하지는 않았어요. 시민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축제들이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내 돈이 아닌 공공적 목적이 있는 돈, 그러니까 ‘시민들을 대리해서 위임받은 돈이다’ 이런 생각을 버리지 않았어요. 대중이나 시민들과 소통하라고 나오는 돈이기 때문에, 공동체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감독의 판단인 예술적 선택이나 연출 아이템 같은 것들을 가지고, 어떻게 공동체성과 문화를 이해하는 감수성을 확산할 것인지를 늘 고민하고 있거든요. 이 고민을 잊지 않으려 과정 속에서 계속 노력했어요. 지역이 갖고 있는 특수성에 문화적, 예술적 감수성이 공동체 안에서 투영되는 것에 일조해야 한다는 생각을 놓치지 않고 일했던 것 같아요.
[최선영] 외부에서 봤을 때는 실패나 시행착오가 없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안에서는 감정이 쌓이고 체력적으로 무리함도 쌓여 관계가 힘들어지는 게 가장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저한테도 이런 일이 계속 있었거든요. 사람이라서 유연하지 못한 것도 있었고 살피지 못한 것도 있었고요.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느낀 건, 기획자든 예술가든 뭔가를 기획할 때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천천히 작은 규모로 기획하는 게 저에게 잘 맞는 거 같아요. 커지면 물리적으로 잘 살피지 못하게 되더라고요. 규모가 크고 짧은 시간에 가쁘게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건 저에게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경험이 쌓이면 서서히 나에게 맞는 작업의 규모나 형식, 호흡을 알게 될 거예요. 경력을 만든다든지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가 있는 시기가 아니라면, 나에게 맞는 것을 찾고 그것에 전문적으로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황상훈] 사업을 잘할 거냐, 사람을 잘 남길 거냐. 근데 둘 다 잘해야 된다. 사업이 잘 안돼도 사람이 있으면은 어떻게든 연결될 수 있겠죠. 근데 사업은 잘 됐는데 사람이 안 남으면 지속성이 없죠. 이 두 개를 잘 가져가야 해요. 사람을 중심에 놓고 가면 사업도 따라올 수 있다 이런 태도가 중요한 것 같아요. 사업도 남고 사람으로 이어지는 것이 힘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사업 기획서를 쓰기 시작한 사람들이나 이걸 보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조영신] 내가 충분히 고민했다면 화나거나 부끄럽지 않아요. 기분이 좋을 순 없으나 떨어지든 붙든 크게 상관없거든요. 근데 왜 화가 나는지 아세요? 내가 부족한 걸 어떻게 알았지 하는 감정일 거예요. 길이 하나뿐이 아닌데 너무 공모에 몰입하거나 조급해하지 마세요. 일이 없어서 불안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선택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저도 여기까지 온 거라고 말할 수 있어요. 공모만을 바라보지 말고, 정식적인 기획서가 아니라도 꾸준히 관심 갖는 일들을 어떤 형식으로라도 남겨놓고 모아놓고 준비하고 있으면, 다른 누군가도 맡을 수 있지만 내가 맡으면 더 잘할 수 있다는 자기에 대한 확신의 순간이 올 거예요.
저는 사이즈가 크고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걸 좋아해요. 조직가 스타일의 감독이 취향인 것 같아요. 기획서를 쓸 때도 ‘누구한테 가서 PT를 해도 이 기획은 된다’ 이런 자신감으로 일해요. 떨어지면 내가 잘못 봤네 하고 반성도 하죠. 기획은 익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래 고민해야 하고 왜라고 하는 지점이 정확하게 드러나야 하죠. 그렇게 쓴 기획서는 내가 다른 사람한테 ‘이거 네가 가져가서 사업해도 된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돼요. 9억짜리 제안서를 쓴 적이 있는데, 저보고 그 제안서로 다른 사람이 사업해도 돼요? 물으시길래 하실 수 있다면 가져가라고 했어요. 물론 그 말의 맥락은 사업이 좋다는 말이었고, 결과적으로 저는 더 큰 일을 맡게 되었죠. 그때도 제 생각은 같았어요. 사업 자체가 충분히 좋다면 누가 하더라도 의미가 있어요. 내가 맡았을 때 더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다시 그 일을 가져올 수도 있을 거고요. 욕심이나 불안 때문에 일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이 왜 필요하고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과 책임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최선영] 요새 기획서와 관련된 멘토링과 강의 요청이 많은데요. 당장 다음 달 사업 뽑히고 싶다. 당장 올해에 지원 사업 하나 되고 싶다. 이런 저변에 깔린 갈급함이 너무 위험하게 느껴져요. 좀 길게 보셨으면 좋겠고요. 선정 여부만으로 자신의 작업 의미나 전문성을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꼭 좋아서만 뽑히는 건 아니에요. 저도 심사를 하게 되니까 정책적, 제도적 한계나 예산 편성 등의 현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뽑는 것도 있고요. 그러니 선정 여부보다 나의 기준을 두고 활동하시면 좋겠어요. 지원 사업이라는 건 결국 예술가가 하는 여러 가지 행위 중에 만나게 되는 하나의 사건일 뿐이에요. 한국은 지원 사업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우리가 굉장히 갈급하게 집중하고 있을 뿐이지 내 작업의 질이나 앞으로의 길을 좌지우지하지는 않는다는 걸 스스로 냉정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측면에서 내가 이거 뽑혔다는 것만으로 자기 어필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그런 사람들은 절대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요. 오래 활동하지 못해요.
지원 사업이 선정되는 것만이 자기의 전문성을 보여주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는 한편으로 지원 사업을 건강하게 활용하고 졸업하기에 대한 강의도 해요. 지원 사업을 매년 쓰는 행위 외에 다른 선택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지원 사업만 하면서 살 수도 없고요. 공정성 측면에서도 많이 받은 사람은 졸업하고 자신의 루트를 어떻게든 찾아야 해요. 지원 사업을 매년 쓰는 것 외에 다른 노력이 필요하죠. 저는 그걸 자기 언어화하자, 기록하자, 고민하자는 거예요.
연말에도 인천문화재단에서 이런 맥락으로 기록 워크숍이나 강의를 했는데요. ‘우리에겐 아직 남은 숙제가 있다’라는 제목을 지었거든요. 지원 사업 끝나고 결과 보고서, 정산 보고서 쓰느라 바쁘지만 이거 외에 다른 중요한 것이 있거든요. 현장에서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게 있어요. 그걸 기록하지 않아요. 보고서를 열심히 쓰는 것 외의 자신을 위한 작업도 하고 있어야 해요. 우리에게는 계속 남은 숙제가 있어요. 예술은 그것을 인정하고 무리하면서 하는 것이에요. 어렵겠지만 그 특성을 받아들이고 지원 사업에만 집중하지 않고 좀 넓게, 길게 봤으면 좋겠어요. 이게 의연함으로 쌓이면 지원 사업 붙고 떨어지고가 중요하지 않은 순간이 조금씩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황상훈] 실패가 곧 성공이다 이런 얘기 있잖아요. 실패가 성공의 발판이 되는 거잖아요. 떨어져 보면 각성도 되면서 어떤 걸 보완해야 할지 찾게 될 거예요. 그래서 많이 경험해 보는 게 중요한데요. 나 혼자 경험해서는 늘지 않아요. 반드시 객관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돼요. 그래서 주변이든 아니면 어떤 선생님이든 내가 쓴 작업에 대해서 리뷰를 좀 받아보면 좋겠어요. 그 리뷰에 대한 수용성이 있어야 하고요. 내 고집 잔뜩 가지고 있고 철벽을 다 쳐놓은 상태에서 어떠냐고 하면 아무리 자기한테 도움이 되는 얘기라도 인정하지 않게 되잖아요. 열린 마음으로 의견을 듣고 나의 보완할 점을 찾아내는 것. 그러면 다음번에는 훨씬 보강이 돼서 나올 거예요. 선정되기 위한 기교와 기술이 중요한 게 아니라 기본을 잘 갖추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어디쯤 있는지 주변으로부터 그런 기회가 있을 때 꼭 리뷰를 받아보면서 자신의 현재를 진단하고 보완점을 찾아보시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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